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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민 가고 싶은분들만 보십시오(펀글)

2222008-10-30 00:00:00조회 6114

아래 아틀란타 타임스님이 올려주신 기사에서

미국에서 상황 안좋다고 한국 돌아가신다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기에 아래 미주 중앙일보에서 펀글 올려

드립니다. 한국? 가는 순간 상황 종료입니다.....

그래도 미국입니다. 미국에서 취업안된다고 한국에선 되는줄 아나요?

영어? 아래 글 보시면 영어 잘해보았자 한국에서 아무 도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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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졸 ‘백수’가 25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최근 집계됐다. 비정규직을 떠돌며 반 백수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까지 합하면 300만 명이 훨씬 넘으리라는 예상이다. 그들은 과연 어떤 하루를 보낼까? 대한민국에서 백수로 사는 법-.

“‘백수’생활이 10년 넘어서일까요? 이제는 인이 박였다고 해야 하나?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올해 36세로 무직자로 산 지 10년째가 된다는 정 모 씨.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낡아서 물이 빠진 청바지에 유행이 한참 지난 외투를 입고 등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책가방으로나 쓸 법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은 양복에 넥타이를 맨 채 일과 씨름하고 있을 시간인데 그는 국립도서관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정씨는 재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5급, 7급 공무원시험을 두루 준비했다.

한때는 기자시험에도 도전해 봤다. 기업의 문을 두드린 적은 없다. 회사가 맞지 않는 것 같아 아예 원서도 내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도 그는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살짝 흐려졌다.

“지금은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없는데…. 워낙 일 없이 지낸 지 오래되다 보니 가족들의 눈치가 보이기는 해요. 가족들이 공인회계사 준비를 하라고 하도 성화여서 공부하는 시늉은 하고 있어요. 열심히 하고 있지는 않고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현장에 나가보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그는 자리를 떠났다. 오후 3시가 다 돼가는 평일의 도서관은 원서를 손에 든 대학생부터 머리가 하얗게 센 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붐빈다. 30대로 보이는 사람들을 붙잡으면 열 명 중 일곱 명 정도는 대학을 졸업한 청년백수였다.

백수로 지낸 기간이 길고 짧음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도서관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혼자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한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99학번으로 졸업한 지 2년이 지났다는 김 모(29) 씨가 늦은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구직에 나서면서 전공과 관련 있는 회사에 취업하려고 꽤 노력했는데 생각처럼 잘 안 됐어요. 학교가 연결해준 회사는 근무조건 등이 별로 안 맞았고요. 집이 경기도인데 학교는 충청도여서 그 지역 회사에 취직을 주선해 줬거든요.”

그는 취업에 실패한 후 쭉 기계설계기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자격증을 따서 기계직 공무원에 도전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자격증을 내세워 기업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는 시험에 떨어져 내년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기는 책을 공짜로 볼 수 있어 오는 거예요. 굳이 안 사도 되니까요. 집에서 아침 9시에 나와 저녁 7시까지는 공부해요. 집에 있으면 가족들이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소리도 상처가 되거나 신경 쓰이는 경우가 많아 자꾸 밖으로 나오게 되네요.”불편한 마음에 집을 나서지만 갈 곳은 그리 마땅치 않다. 졸업하고도 구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학교 도서관을 다시 찾기가 망설여진다. 지인들과 마주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결국 주위의 공립 도서관을 이용하게 된다.

- 지방대학 서럽지만 명문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아버지가 제빵기계를 만드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세요. 직원이 2명뿐이어서 제가 가끔 일손을 도와드리고는 했죠. 몸이 힘든 일이고 연세도 많으셔서 이제 그만 쉬셔야 하는데…. 자식 셋이 돈을 벌면 일 안 하셔도 되는데….”

나이 든 아버지께서 험한 일을 하시는 것이 모두 자신의 탓인 것처럼 느껴지는지 김씨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 싶은 생각을 누군들 안 할까? 취업이나 공무원시험 등 몇 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터여서 그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도서관에서 마주친 대졸 백수들은 대부분 공무원시험이나 자격증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사에 취업하는 문턱이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특히 서울 바깥의 지방대학을 나온 학생들은 학벌을 따지지 않고 성적으로만 평가받는 공무원시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 서른한 살의 김도영(가명) 씨 역시 비슷한 경우다. 신림동에서 만난 그는 지방 국립대를 졸업했다. 취업난이 심하다, 심하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단다.

이력서를 50장 가까이 쓰고 나서야 비정한 현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처음에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스무 번, 서른 번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나중에는 사람이 진짜 이상해져요. 하루 종일 취업 사이트를 뒤지면서 이력서를 낼 곳의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그 중 한 군데도 이력서를 넣지 않았어요. 왜인줄 아세요? 더 이상 떨어지기 싫었거든요.”

거의 반 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폐인처럼 PC방만 전전하던 그는 올 초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노무사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려고 마음먹고 제 자신을 돌아보니 벌써 서른이 넘었네요. 벼룩도 낯짝이 있지, 어떻게 부모님께 손을 벌리나요? 제가 벌어 책값도 내고 생활비도 내야죠. 얼마 전부터 여기 신림동 고시원에서 총무 일을 시작했어요.”

만만하게 봤던 아르바이트인데 막상 해보니 보통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 공부와 일을 같이 하려고 했던 처음의 계획은 물 건너간 것 같다. 그는 차라리 고되더라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딱 한 달 정도만 할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시험을 치는 내년 여름까지 그 돈으로 생활해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밥은 고시원에서 주고, 김치 정도는 냉장고에 있어요. 김이나 캔참치, 계란 같은 것을 사서 대충 밥을 차려 먹으면 1주일에 1만 원으로도 살 수 있던데요. 술자리요? 친구들이 사준다고 부르면 한 달에 한두 번 나가는 정도예요.”

이렇게 생활하는 김씨의 한 달 생활비는 10만 원 남짓이다. 그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담뱃값. 꼬박꼬박 몇 만 원이 드는데도 이것만은 끊지 못하겠단다.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이자 낙이라고 한다. 김도영 씨처럼 기업 입사시험에서 여러 번 낙방한 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공무원시험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울 노량진 일대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눠본 이들 중 절반가량의 사람이 “나는 기업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원서조차 내보지 않았다는 점도 놀라웠다. 국내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고 국제대학원에 진학한 이 모(31) 씨는 현재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이들에 대해 그는 일침을 놓았다.

“물론 공직에 뜻을 두고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업의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공무원시험을 붙잡고 있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건 너무 패기가 없는 것 아닌가요?” 이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원하는 기업에 취직하지 못해 다음 기회를 노리고자 대학원에 가게 됐다. “지금은 석사까지 마쳤으니 구직이 쉽지 않겠느냐”는 말에 그는 손을 내젓는다.

“어휴, 말도 마세요. 저처럼 대학원 나온 사람이라고 해서 원하는 기업에 척척 가는 것은 다 옛날 이야기죠. 인문계열 학생들은 이공계 학생들에 비해 곱절은 더 취업이 어려운 것 같아요. 전공을 살려 해외경영 업무를 하는 파트로 가고 싶은데 뜻대로 될지 잘 모르겠어요.” 그는 ‘석사’라서 취업 과정에서 얻는 이점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이라면 원하는 곳에 취직하기 위해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보다 여러 가지 인턴십을 경험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 “대학원 간판도 옛날에나 통해”

구직자들은 가족과의 갈등을 피해 일 없이 길 위를 헤매기도 한다.“제가 참 아쉬워하는 부분 중 하나예요. 인턴이나 기업에서 주최하는 여러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력서에 그런 내용을 써넣은 학생들은 인사담당자가 좋게 평가한다고 해요. 어학연수나 우수한 학점보다 실속 있게 좋은 인턴 자리 하나 경험해 보는 것이 훨씬 나은 것 같아요.”

최근 몇 달간 백수로서 일 없이 지내는 이연지(가명·28·여) 씨 역시 학벌에서는 그다지 밀릴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씨는 우리나라 사립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의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토익은 거의 만점에 가까워 소위 말하는 ‘스펙’도 빵빵하다. 구직 이야기를 꺼내자 자신이 경험한 당혹스러웠던 경험 한 토막을 들려줬다.

“저는 출판계에서 일하고 싶어 쭉 그쪽을 위주로 준비해왔어요. 한번은 모 인터넷 서점에서 서류전형에 통과돼 면접을 보러 갔죠. 전형 과정만 4차에 달했기 때문에 한 달 내내 그 시험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최종까지 올라가자 인사담당자들도 “이번 전형은 임원진에게 인사만 드리고 오는 것이니 거의 붙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 드디어 합격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이씨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욕심을 냈던 다른 회사도 포기하며 ‘올인’했는데…. 그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어요. 대기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장점유율 1위 기업도 아닌데 시간을 한 달씩이나 빼앗고 구직의 기회도 안 주다니요.”

더 황당했던 것은 그 기업의 연봉이 1,800만 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등 소위 명문대 인문계열 학생들이 그 박봉을 감수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원래 출판계가 봉급이 적다는 것은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설마 나보다 좋은 학벌에 그런 대우를 받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을까’ 했던 예상은 산산이 깨졌다고 한다.

영국유학을 다녀와 영어에도 능통한 이씨는 졸업 후 2년 가까이 백수로 지내다 한 대형서점에 취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격무가 연일 이어지는 것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봉급도 적은 데다 원래 제가 해야 할 일 외에도 자꾸 다른 업무를 시키더군요. 휴일도 불규칙적이고 회사도 서울이 아니라서 점점 몸은 더 나빠지고…. ‘이제 한계다’라고 느낄 때쯤 미련 없이 사표를 냈어요. 한번 그렇게 회사에서 혹사당하고 나니 왜 다들 공무원, 공무원 하는지 이해가 되네요. 원하던 일이 아니더라도 무난하게 내 능력 되는 데까지 일하며 배 곯지 않는 수준의 봉급을 받는 곳이라면 저도 어디든 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앞에서 만나본 인문계열 전공 학생들과 달리 예·체능계 출신 학생들은 선택의 폭이 적어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미술을 전공한 허 모(31·여) 씨는 대학 졸업 후 2년간 학원 강사로 일하다 임용고시를 치기로 마음먹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임용고시를 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교직을 이수해야 해서 교육대학원을 다녀야 했어요. 늦게 대학원을 간 탓에 졸업하니 서른한 살이나 됐네요. 그래도 평생 불안정하고 수입도 적은 학원 강사만 할 바에는 좀 오래 걸리고 당장 등록금 등 비용이 들더라도 임용고시를 치는 것이 낫다고 봤어요. 주변에도 결혼하고 애를 낳을 때까지 학원 강사를 하다 뒤늦게 임용고시를 치러 대학원에 진학하는 아줌마도 있어요.”

친구와 함께 도서관 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허씨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편안한 트레이닝복 하의 차림이었다. 그 반쯤 가린 얼굴에서 우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경기도교육청이 공고를 냈는데 2009년 교직임용에 중학교 미술교사는 23명을 선발하기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너무 적은 수여서 허씨는 낙담한 표정이었다.

“미술교사는 적게 뽑기 때문에 경쟁률이 40대 1에 이르는 지역도 있어요. 주변에는 연속 네 번째 시험을 치는 선배도 가끔 보이고요. 속이 타서 죽을 맛이죠.(웃음) 지난 3월 졸업해서 반 년째 백수나 마찬가지인데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죠.”

허씨는 교원임용제도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우수한 교사의 자질을 갖춘 사람은 많은데 교원 임용의 문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아직도 선진국에 비하면 학생수 대비 교사가 턱없이 적어요. 공교육의 품질 향상보다 재정적 여건만 신경 써서 그런 것 아닌가요?”

- 학벌·능력에 관계 없이 직장 선택 폭 좁아져

대학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던 한 학생이 엎드려 잠시 잠을 청하고 있다.지난해 한번 시험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 올해는 꼭 합격하고 싶다며 허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문대생도 취업 걱정을 덜지 못하는 요즘, 선진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은 어떨까?

얼마 전 미국에서 MBA 과정 마케팅을 공부하고 귀국한 최 모(35) 씨는 “나는 억세게 타이밍이 나쁜 사람”이라며 애써 웃어 보였다
. “MBA 과정을 마친 후 미국에서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잘 안 풀렸어요. 아시다시피 지금 미국 경기가 엄청 안 좋잖아요.”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후 취업해 4년간 정보기술(IT) 직종에서 직장생활을 해본 적도 있다. 시스템통합(SI) 회사에서 외국계 기업에 대한 컨설팅 프로젝트를 맡았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났다. ‘그 정도의 경력과 이력이면 취업 걱정은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한다.

“취업을 아예 못할 것이라는 걱정은 솔직히 안 합니다. 다만 제가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 원하는 직장에 갈 수 있을지가 문제죠. 이미 미국에서 한번 실패했잖아요? 지금 세계적 금융위기 여파 때문에 저도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것을 느껴요. 선택의 폭도 많이 좁아졌고요.”

대졸자를 비롯한 고학력 백수들의 삶은 졸업 후에도 취업을 위한 준비나 또 다른 공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 중 공무원시험에 도전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매년 치솟는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이해될 법도 했다. 대졸 구직자들은 자신의 욕심에 차지 않는 회사에 취업하기보다 안정적인 공직생활을 택하겠다는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자연히 자의 반, 타의 반 백수생활이 길어진다. 시험에 합격한다면 다행이지만 매번 낙방하다 어영부영 나이만 들어 이제는 기업의 문을 두드릴 수조차 없게 된 사람도 많았다. 대학을 졸업한 백수들의 삶은 그나마 우아한 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나선 이들은 직장을 잡기 위해 더 치열하게 뛰어야 한다.

대졸자들이 늘어나 고졸 학력의 사람들이 하던 일을 차지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더 불리한 처지에 처하게 된 것이다. 김상우(가명·31) 씨의 한 달 수입은 50만 원이 전부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삿짐센터에 취직해 일을 시작했다. 몸을 쓰는 직업이어서 많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처음에는 그럭저럭 벌이가 괜찮아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만큼 돈을 벌었던 기간은 정말 잠시뿐이었어요. 최근 몇 년간 경쟁업체들이 우르르 생겨나면서 일거리가 뚝 끊기기 시작하더군요. 일이 있어야 그날 나가 일당을 받는 식이기 때문에 수입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한 달 내내 한 푼도 못 만지는 때도 있어요. 많이 벌어봐야 한 달에 50만 원 수준이에요.”

특별한 기술도 없는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 자그마한 업체의 말단 직원 자리도 대졸 사원들이 꿰차고 있다. 늘 이삿짐센터의 작업복을 걸치고 다니지만 하루에 한 건도 하지 못하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새로 일을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은 늘 하는데 선뜻 용기가 안 나요. 사실 제가 성격이 좀 욱하는 기질이 있어서 영업이나 다른 일은 잘 못하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용돈 몇 푼을 얻어 쓰고는 해요.”

김씨는 현재 알코올중독에 가까운 상태다. 취재를 위해 만난 식당에서도 그는 손에서 술잔을 놓지 않고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힘든 일을 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술을 가까이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한 병 가까이를 마신 그의 감정에서 심한 기복이 느껴졌다. 위태로워 보였다.

서른여섯의 장대희(가명) 씨는 벌써 회사만 7군데를 전전하고 있다. 대학 졸업장도 없고, 나이도 젊지 않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영업직밖에 없었다. 지금 그는 초고속 인터넷 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이번 달에 월급을 받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작은 목소리에 조심스러운 말투만 봐도 장씨의 소심한 성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영업직은 잘 안 맞을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직장에서 눈치도 보이고 돈도 못 받아요. 그래서 다시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는 하는데, 그래 봤자 영업직밖에 없던걸요.”

장씨는 틈만 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창업교육기관에 연수를 받으러 간다. 창업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는 자본금도, 그럴 만한 배짱도 없다. 교육기관에서 연수를 받을 때마다 나오는 연수비가 더 절실하다. 그의 가방은 각종 교육에서 받아온 전단지와 안내물로 불룩했다.

넘쳐나는 대졸자에 밀려난 고졸 구직자

“이제 나이가 들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절절한 외로움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하는 장씨에게는 이성 친구를 만나고 사귈 만한 통로조차 없었다. 고졸자부터 해외 MBA 학위를 지닌 사람까지 구직자 개개인에 얽힌 사연은 다양하지만 이들 마음속에는 모두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나이가 많고 오래 구직생활을 해온 30대 백수들은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며 비참한 처지를 견디고 있었다. 처음 구직에 도전하며 가졌던 의욕도 이제는 잃어버린 지 오래다. 젊은 시절 간직했던 패기와 열정도 모두 사라진 채 망연자실해 있는 청춘들을 보며 20대 구직자들도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30대 구직자는 “노인들을 위한 취업박람회는 있는데, 30대 무직자나 재취업자들을 위한 취업의 장은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정된, 아니 점점 더 줄어드는 회사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무한경쟁을 뚫고 가야 한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는 “하향취업률이 2000년에 비해 약 3%포인트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하향지원한 구직자가 줄어든 대신 고학력 예비근로자가 실업이나 비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됐다는 분석이다. 고학력 백수가 늘어나고, 고졸자는 대졸자들에게 밀려나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대졸 이상 백수가 257만 명이라는 한국사회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댓글 (15)

15__
bff00
· 17y ago
어짜피 거기서 거기인 상태라면. 나라넓고 일자리 훨씬많은 미국이 낫다고 생각해요. 지금 역이민가면요 한국에 가뜩이나 자리없는데 더 빽빽해지고 서로 좋을거 없다고봄..
답글
14__
너의 목소리00
· 17y ago
주변에 은근 노는 사람 많음..잘난분들 주위엔 다들 잘 나가겠지 끼리끼리라는말.. 좋은대학나온 사람은 많으나..면접관들이 바본가..또라이들도 겁나많을텐데..자기 성격들을 한번 뒤돌아보는게..
답글
13__
JWP00
· 17y ago
힘든 사람들도 많지만 괜찮은 사람들이 더 많읍니다.
답글
12__
고급중국요리00
· 17y ago
막일 전전하다가 미국 동부서 자동차 도장하는데 작년 세금보고 8만불했슴다. 7년 전 서울서 대학 나왔구 직장 생활 했는데 미래가 없더군여. 그래 여와 육체노동합니다. 후회없슴돠. 한국사람 외국에선 경쟁력 있어여. 역이민가서 한민족과 경쟁하는 거 자신읍네요. ㅋㅋ 연봉 8만불 자신도 없구여. 흑흑
답글
11__
고급중국요리00
· 17y ago
사실 제 헬퍼하는 유학생 동생도 연봉으로 치면 2만5천불이네요.식당 허드렛일 조차도 그 정도 벌어요. 돈 안쓰고 모아 한국 송금해보세요. 요즘 처럼 환율 좋을땐 더욱 흐뭇하실겁니다.
답글
10__
고급중국요리00
· 17y ago
ㄱㄱㄱ
답글
9__
chris00
· 17y ago
이글 어디서 펐나요? 거짓말도 이정도면 수준급.. 펌글은 잘 생각해서 퍼나르시는게 좋습니다.
답글
8__
fearnot00
· 17y ago
미쿡은 허드랫일해도 괜찮지만 한쿡은 진짜 어렵다
답글
7__
돈되는일00
· 17y ago
... 값싼 노동력으로 제국에 봉사하던 시절이 이삼십년 정도 밖엔 안된것 같은데, 어느덧 눈부신 발전으로 "값싼 고급 노동력"을 제공하는 단계가 된것 같군요. 파이는 커지는데 알맹이는 한 가운데만 모여 있는 저질 파이가 되고 있으니...
답글
6__
rotiboy00
· 17y ago
출판계나 딱히 자기 하고싶은 분야가 하필 연봉이 낮을 경우...그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서 어쩔수없이 봉급낮은거 감수하고 지 스스로 구정물에 뛰어드는거지.... 이해력 완전 제로구만
답글
5__
rotiboy00
· 17y ago
나 저대학들중 하나 나왔지만 직장생활 2년차 연봉 4000이고, 내가 특별히 취업잘한 케이스도 아님. 헐...
답글
4__
rotiboy00
· 17y ago
미친거아냐 무슨 연고성대 졸업하고 연봉1800짜리도 가기가 힘들어.... 댁이야 말로 몰라도 너무 모르네요. 상위권대졸자들의 취업수준을 전혀 모르는거겠지만.
답글
3__
풍화00
· 17y ago
너같은 지잡대애들이 2천을 안넘는거지^^
답글
2__
니 애비다00
· 17y ago
거울좀봐라 한심아..지금 니 꼬라지가 어떤지를..밀려나는 막장 인생주제에 게시판에서 낑낑거리는 꼬락서니 하고는 풋
답글
1__
풍화00
· 17y ago
너 한국인이냐?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나왔는데 연봉2천이 안넘는다고? ㅋㅋㅋ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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