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의 생일, 그리고 나의 어머니
11월 11일, 언젠가부터 사람들에게 '빼빼로 데이'라고 불리우는 그 날은, 내게는 놀라운 날입니다. 10년 전 그날 아침, 아내는 "아마 오늘일 것 같아. 배가 너무 아파"라고 말하며 남산만해진 배를 끌어안고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오늘 일 하러 가지 말지..."라고 말하며 저에게 불안하다는 눈길을 보냈지만, 저는 "뭔 일 있으면 전화해" 하면서 그냥 일을 나섰습니다.
당시 저는 오리건 주 비버튼에 살고 있었습니다. 라디오 방송국과 신문을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일할 때였지요.
일 나간지 두 시간도 안 돼 전화가 왔고, 저는 집에서 아내를 데리고 지정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산고가 시작되었지만, 간호원이 "곧 나올 것 같다 It'll happen soon" 이라고 몇번이고 말했지만 출산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통분만을 하기 위해 맞았던 척추 주사가 듣지를 않아 아내는 더욱 고생이 심했습니다.
아침 열 시가 조금 넘어 병원에 들어간 아내는 오후 일곱시쯤이 될 무렵, 더욱 강한 고통이 옴을 호소했고, 저는 무슨 일이 나는 줄 알고 병실의 콜링 단추를 눌러 간호원을 불렀습니다. 그들도 분주했습니다. 온갖 기계들을 준비하고 하는데, 아마 곧 아이가 태어나려나 보다 했습니다. 그리고 아홉시쯤, 담당 산부인과 의사가 그제서야 나타났습니다.
의사는 내게 산모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아내가 힘을 주는 것을 도와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같으면 남자는 산실에 못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남자도 함께 들어가야 하며, 이런 식으로 도움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여자의 고통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거지요.
저는 거기서 아내에게 참 바보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참 힘들고 아픈 아내에게 "그래, 조금만 참아. 어디, 어디가 아파!"라고 엉겁결에 소리를 질렀고, 아내는 한참 고통스러워하다가도 그런 제 얼굴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며 "바보야, 배가 아프지 어디가 아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담당 산부인과 의사는 한국분이셨는데, 나중에 말씀해 주시길, "전 별 말 다 듣고 별걸 다 봤습니다... 남편 머리카락이 한 줌 뽑힌 경우도 봤죠"라고 말해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밤 열한시가 다 되어서야 아이는 나올 기미를 보였고,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다 늦은 밤 열한 시 10분 좀 넘어서, 아기는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전 그때까지도 아이가 태어나면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때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무슨 펌프 같은 걸로 입안의 양수를 제거하고 나니 아기가 작게 고고성을 터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수고했다, 허니... 수고했어."
눈물많은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을 지켜보며 내내 울고 있었습니다. 그 고통, 그리고 그 환희, 새롭게 이 세상을 향해 태어나는 우리의 핏줄... 눈물을 닦고,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탯줄, 직접 자르시겠어요?" 의사가 물어봤을 때, 저는 결국 고개를 흔들어야 했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꼭 내 손이 무척 더러울 것 같았습니다.
의사가 탯줄을 자르는 것까지 본 후, 저는 시애틀의 어머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원래는 '엄마! 건강한 아들이예요' 라는 식으로 말하려 했는데,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엄마... 잘못했어요."
그리고 또 눈물이 펑펑 터졌습니다. 제가 얼마나 불효 막심한 자식이었고, 이렇게 어렵게 세상에 태어나선 어머니 속을 얼마나 썩였는지, 그 순간에는 제가 잘못했던 것들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닌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머니 목소리도 젖어 있었습니다.
"네가 뭘 잘못했다고 하니... 넌 내게 언제나 '기르는 재미'를 주는 아들이었단다."
"엄마..." 병원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지호가 열 살이 됐습니다. 시간이 참 빨리 흐릅니다. 제 나름대로 좋아하는 것도 생기고, 제 아래로 동생도 생기고... 한 닷새만 있으면 또 지원이 생일이군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도 나이먹음을, 또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나이드심을 느끼고, 그러나 위안과 희망을 동시에 갖습니다.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씩씩하게, 또 사랑스럽게 커 주는 아이들, 그리고 지금 저렇게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아이들과 누워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전 제 행복을 제가 지켜야한다는, 그렇게 제가 더 똑바로 살려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쥘 수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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