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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취임 하루 전 맞은 '마틴 루터 킹 데이' 휴일

2222009-01-20 00:00:00조회 44626

월요일 아침, 뜨겁게 물을 끓여 커피를 우려낸 후 찬찬히 잔에다 부어 놓고 나서 잠시 인터넷을 서핑하며 이런저런 소식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 여유로움은 오늘이 공휴일이라는 데 있습니다. 연방공휴일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일을 맞아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1월 셋째주 월요일을 기념일로 정해,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고,  적지 않은 추모행사가 미 전역에서 열립니다. 오늘 아침, 제가 가질 수 있는 이 여유로움은 사실 그런 선대의 투쟁 없이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들입니다.

 

이민자로서, 그리고 미국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킹 목사를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아니었다면, 미국 내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유로움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시대의 선지자였고, 비폭력 사회개혁운동가로서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모습은 인종과 시대의 갈등을 뛰어넘어 인류의 역사에 각인된 위대함이었고, 예지였다고 생각합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은 계속되는 인종간의 갈등으로 인해 사회가 위협받는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미국에 노예로 잡혀 팔려온 아프리카인들은 자본주의적 성장의 필요성으로 인해 공업화된 미 북부 지대의 노동력 확보 요구에 따라, 정치적으로는 '노예해방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남부 대농장들에 묶여 있던 흑인들을 표면적으로 '해방'시키게 되었고, 이로부터 자각된 미국 내 흑인들은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으나 그것은 그들의 꿈에 불과했습니다.

실제적으로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그나마 어느정도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소련과의 냉전시기였습니다. 군대와 국방 부문에서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미국 사회는 그때까지 문을 열지 않았던 유색인종에의 공직 진출 허용을 단행했고, 자각한 흑인들은 지금까지 드러내놓고 자행됐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번번히 그 두터운 차별의 벽에 막혀 그 날개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흑인 사회엔 두 명의 걸출한 지도자가 탄생하게 되니,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입니다. 각각 미국 내 인종관련 사회운동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이 두 지도자는 모두 암살로 삶을 마감해야 했지만, 이들이 그들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뤄낸 이 사회에서, 지금 저같은 유색인종 이민자도 비교적 여유롭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콤 엑스는 그의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의 초기엔 극렬한 흑백 분리자로서, '흑인만의 공화국'을 외쳤고, 인종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극렬 폭동주의자'로서의 이미지로서 자리매김됐었으나, 그의 삶을 마감하기 전 비폭력주의로 돌아섰고, 이로 인해 노선이 다른 '같은 흑인'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반면, 킹 목사는 처음부터 비폭력주의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민중들에게 전달했으며, 이같은 그의 입장은 흑인 뿐 아니라 진보적 백인들에게까지도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꿈은, 그 스스로가 '희생제물'로서 제단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성취가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서 미국 사회는 킹 목사가 성취하고자 했던 이상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흑인들의 지위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향상되어 왔고,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인 법안들도 마련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흑인들의 지위는 아직도 이 사회가 그들에 대한 차별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사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흑백 인구비율과 대비해 볼 때, 미국 내 교도소 수감 인구를 흑백으로 비교해 보면 사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평등의 '허구'가 금방 나옵니다. 그리고 백인 중심의 이 사회의 건재를 위해, 미국 정부는 1960년대 이후 가족의 부 축적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성향이 강한 아시아인들의 대량이민을 허용했고, 이들은 '흑백 갈등'의 중간지역에 위치하는 일종의 '버퍼'로서 사회의 일익을 담당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백인들은 빈부 격차로 인한 대규모 갈등 폭발이었던 로스앤젤레스의 4.29 폭동을 '인종폭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매스컴을 통해 몰아부치기도 했었습니다. 이때의 폭동으로 삶터를 잃은 한인들에게 이같은 사실 왜곡은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일부 한인들은 흑인들에 대해 깊은 증오심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 진실은 사실 다른 데 있을 것입니다.

 

이유야 어떻게 됐든, 우리 한인 이민자들 역시 그들에게 많은 빚을 진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그들이 사는 곳에 들어가 장사를 해 부를 축적했고, 그들이 싸워서 얻은 것들을 거의 우리 힘 안 들이고 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사는 우리는 내일 미국에서 처음 '흑인 대통령'이 선서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이 꿈꾸었던 그 세상이 아직 이곳에 도래했는지, 저는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살아 있다면 80이 되었을 그의 생일 이후에 지켜보는 오바마의 대통령 선서는, 아마 그에게 그가 꿈꾸었던 날개 하나를 달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주어진 이 휴일, 저는 킹 목사를 생각하며 그에게 감사합니다. 또 오바마의 선서를 지켜볼 것을 생각하며, 그래도, 적어도 진정한 사회통합이라는 면에서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미국의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며 커피 한 잔으로 이 아침을 차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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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i manera00
· 17y ago
차분하고 깊이가 있는 글을 오랜만에 온라인에서 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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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식00
· 17y ago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같은 날, 같은 여유를 누리면서도 소수 몇명의 희생과 공로를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제 모습이 부끄럽네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까지 감사하는 모습, 배우고 갑니다.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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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진혼곡00
· 17y ago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웠던 흑인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와 같은 '소수민족'들이 미국에서 마음껏 꿈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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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박00
· 17y ago
루터 킹 목사님.. 목사님의 헌신 덕에 미국에 8년은 행복해졌습니다.. 우린 언제 행복해 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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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mea00
· 17y ago
2009. 1. 20. 울 나라는 초상집, 미국은 잔치집... 무희망 그리고 유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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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00
· 17y ago
마틴루터킹 데이에 쉬셨군요... 저는 회사 나왔는데... 울아덜도 학교가고... 오늘이 그 역사적인 날이군요... 출근길에 들리는 뉴스에서 지금 DC는 혼잡을 겪고 있다던데... 저도 동료들과 조금 있으면 컨퍼런스룸에 모여 취임식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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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00
· 17y ago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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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00
· 17y ago
동감하면서 추천도 하고 펌하여 함께 나눕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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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저땅몽땅내땅00
· 17y ago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 합니다/정말 감동적인 연설문의 일부입니다 / 미국 흑인의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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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00
· 17y ago
정말 축하할일 일까요? 전세계가 그의 성공을 강하게 염원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사태에 그렇지 않으면 안되니까요..하지만 미국에서만의 성공이라면 그건 주변국의 희생에 의한 것이겠지요..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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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아빠빈00
· 17y ago
동감입니다. 미국, 선진국은 자국민을 위해 후진국의 피를 빨아먹는 자본주의국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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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아빠빈00
· 17y ago
동감입니다. 미국, 선진국은 자국민을 위해 후진국의 피를 빨아먹는 자본주의국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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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00
· 17y ago
동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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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저땅몽땅내땅00
· 17y ago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we are free at last!” <드디어 자유, 드디어 자유, 전지전능하신 신이여,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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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저땅몽땅내땅00
· 17y ago
But not only that; Let freedom ring from Stone Mountain of Georgia. 뿐만 아니라, 조지아의 스톤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Let freedom ring from Lookout Mountain of Tennessee. 테네시의 룩아웃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Let freedom ring from every hill and molehill of Mississippi. 미시시피의 모든 언덕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From every mountainside, let freedom ring. 모든 산으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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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저땅몽땅내땅00
· 17y ago
Let freedom ring from the heightening Alleghenies of Pennsylvania! 자유가 펜실베이니아의 앨러게니 산맥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Let freedom ring from the snowcapped Rockies of Colorado.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로키 산맥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Let freedom ring from the curvaceous peaks of California. 캘리포니아의 굽이진 산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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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저땅몽땅내땅00
· 17y ago
And if America is to be a great nation, this must become true.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이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And so let freedom ring from the prodigious hilltops of New Hampshire. 그래서 자유가 뉴햄프셔의 거대한 언덕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Let freedom ring from the mighty mountains of New York. 자유가 뉴욕의 큰 산에서 울려 퍼지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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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__
이땅저땅몽땅내땅00
· 17y ago
“My country’ tis of thee, sweet land of liberty, of thee I sing. Land where my fathers died, land of the pilgrim’s pride, From every mountainside, let freedom ring.” 『나의 조국은 자유의 땅, 나의 부모가 살다 죽은 땅, 개척자들의 자부심이 있는 땅, 모든 산에서 자유가 노래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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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저땅몽땅내땅00
· 17y ago
And this will be the day -- this will be the day when all of God’s children will be able to sing with new meaning: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새로운 의미로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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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저땅몽땅내땅00
· 17y ago
I have a dream that one day on the red hills of Georgi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sit down together at the table of brotherhood.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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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00
· 17y ago
킹 목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권 선생님께서도 더욱 분발하셔서 유색인종이 차별에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날이 없어지도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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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끼야끼00
· 17y ago
2009년 1월 21수요일 서울 대구 부산 에서 캐나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설명회가 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mmtyle 에서 확인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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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00
· 17y ago
역시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의 자기희생으로 아주 서서히 변화가 오는군요.오바마 대통령이 기득권의 무서운 세력때문에 미국사회에 당장의 변화를 가져올수는 없겠지만,젊었을때 가난한자들을 위해 사회운동을 한 경험도 있고 태생이 약자인 흑인이니까 그 어느날 오바마 자신의 정치세력과 입지가 정말로 커져 자기뜻대로 정치를 한다면 미국사회에 대단한 혁명을 가져올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케네디처럼 암살만 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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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700
· 17y ago
저도 오늘은 늦게 일을 시작하면서 특별한 공휴일을 누리면서 킹목사와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를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문에 실린 미셀 오바마 인터뷰기사를 읽으면서 눈물이 맺혔습니다.오만한 백인들틈속에서 사는 한인으로서 미국을 위해서 기도하고 세계평화를 기원해야함을 오늘 절실히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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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00
· 17y ago
엑스와 킹, 오바마의 등장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조화롭게 설명해주신 듯 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통해 한인사회의 지적 역량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개인 메일을 알 수 있다면 가끔 그곳 소식도 듣고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시애틀에도 비가 오나요? 오늘밤엔 잠 못이루시지말고 좋은 꿈 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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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rong00
· 17y ago
저도 동감입니다.. 비록 국가공휴일로 인해 저 또한 수업을 안간다는 이유로 너무나도 기뻐했던 1人입니다만.. 만약 킹목사가 없었다면 저희같은 미국 내 소수민족의 자유도 없었겠지요.. 님 글을 읽으면서 저도 킹목사의 희생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내일 오바마 취임식 무진장 기대됩니다. 참된 자유의 미래의 문이 잘 열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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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_
Indiana00
· 17y ago
미국에 가서 열심히 사시는것 같습니다. 코리아아메리칸으로서 오바마취임이 미국역사에 조금 다가가는 시점이 되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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