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가 한국보다 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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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 한 지하도에서 노숙자들이 추위를 막기위해 포장박스로 만든 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한 노숙자가 강변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지금 현재 일본 , 중국 , 동남 아시아에서
불법 체류 하는 한국인들 50 만 명을 넘었습니다.
지금 현재 미국 내 한국인 불법 체류자들 50 만 명을 넘었습니다.
지금 현재 한국인 1만여명이 미국 닭공장 취업 이민 수속 중 입니다.
서울역 , 영등포역 , 부산역 등에는 거지들이 우글 거립니다.
서울 부동산 가격 폭등 과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너무 비싼 휘발유 , 경유 가격
수도권의 심각한 대기 오염 과 수질 오염
시중에 판매 되는 생수도 일반 세균에 심각하게 오염 되어 있지
지하철역의 석면 과 라돈은 시민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 하며
죄 의식 없이 분식 회계 , 학력 위조 와 논문 표절하는 한국인들의 심각한 도덕 불감증
수도 한 복판 (용산역 앞) 에 창녀촌 있지
한국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수도 한 복판에 있는 국보 1 호 남대문을 불태웠지
지구상에서 근로 시간 가장 길며
외주 용역 모든 직종 으로 확대 시켜
OECD 회원국 중 비정규직 비율 1 위로 고용의 질이 최악 이지
조선소 등에서 한국인 외주 용역 근로자들 일 하다가 다치면
산업재해 처리 안 해주고 해고 시키지
OECD 회원국 중 자살율 1 위 하지
입양아 수출 세계 3 위 하면서 출산율 올려야 된다고 떠들지
노후 보장 개 판 으로 노인 자살율 급증 하지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이
한국의 장애인에 대한 열악한 현실에 절망 하여
일본으로 이민을 준비 중 이며
대학 난립 시켜 고학력 실업자들 양산 하여
OECD 회원국 중 4 년제 대졸 취업률 최하위 이며
국립대도 개념 없이 등록금 비싸지
사립 대학들의 매 년 등록금 인상으로
학부모들은 등록금 폭탄에 등골이 휘고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 하지
등록금 1000 만원 시대에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벌려고
제약 회사의 신제품 테스트를 위한 생체실험 아르바이트로
30 만원을 받아서 대학 등록금에 보태며
미국 따라 해서 법학 전문 대학원 (로 스쿨) 과 의학 전문 대학원 도입 해서
1 년에 등록금 2 천만원 이상 씩 받아서
결국 부의 세습을 고착화 시키지
건강보험 민영화 해서
돈 없는 서민들은 보건소 다니다가 죽게 하려 하지
대운하 건설 하다 돈 부족 하면 국민연금에서 끌어다가 쓰려 하지
수도 한 복판에서 경찰들 과 시민들이
컨테이너 박스 와 스티로폼으로 공성전을 벌이지
공영 방송이 국민들 에게 시청료 받으면서 광고비 받아 CF 도 하지
국민연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고 있지
공기업 민영화 하면 대기업 재벌들이 먹을려고 달려 들지
대기업들은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으로 하청 중소기업들에게
납품을 강요 하여 주물 공장 등이 파업 하지
비정규직 증가 와 일본 , 중국에 샌드위치 된 경제 상황으로
제조업 공장들의 해외 이전으로 인한
장기적인 내수 경기 침체 와 한국 대기업 유통 업체들의 횡포로
편의점 등 중소 자영업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FTA 협정 으로 농민들 , 과일 재배 하는 사람들 ,
축산 업자들 , 어민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20 대 태반이 백수 이며
20 대 젊은이들이 제조업 생산직에서 일하려 하지 않고
서비스업 , 판매 유통업 , 보안 , 안내 , 도우미 , 상담원 등으로 일하지
명문대 졸업 하고 몇 년씩 9 급 공무원 , 경찰 시험에 매달리지
아파트 미분양 사태로 올해 들어 100 여곳의 건설 회사가 부도 났으며
이로 인해 은행들의 부실이 우려 되며
어디 개발 된다는 소문이 나면 무허가 비닐 하우스 와 창고들이
우후죽순 처럼 생겨나서 상가 분양권 과 토지 보상금을 노리고 있지
치솟는 경유 가격으로 화물 트럭 , 덤프 트럭 지입 기사들 과
건설 중장비 지입 기사들이 생계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주택담보 대출금리는 10 % 를 넘어
서민들은 이자 폭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농가 부채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IMF 사태 11 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국은 외채가 더 많은 순채무국이 되었으며
주식 시장은 계속 폭락 하며 환율은 계속 오르지
직업 없는 백수 아빠들이 200 만명을 넘었으며
40 대에 직장에서 짤린 가장들이 생활고를 비관 하여
어린 자녀들을 죽이고 자살 하는 비극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생활고를 비관 하여 지하철역에서 투신자살 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 테헤란로에는 다단계 판매 업체 사무실들이 넘쳐 나며
인터넷 과 케이블 TV 는 사채 광고로 넘쳐 나며
신용 불량자들은 계속 늘어 나며
사이비 종교들은 독버섯 처럼 퍼져 있습니다.
다른 환자들 혈관 속에 집어 넣어서 사용한 피 묻은 카테타를 버리지 않고
대충 씻어서 다시 재활용 하면서 건강 보험료를 착복하는 한국 병원들
어려운 상황에 있는 농민들이 받아야 하는 쌀 직불금을
고위 공무원들과 가족들이 받아 착복하며
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 받은 뒤 한국 대학의 지방 캠퍼스에서
비정규직 시간 강사로 임금 착취 당하다가 자살 하지
비정규직 시간 강사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로
2008 년 2 월 서울대 불문과 강사 박모씨(43·여)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3년 노문과 백모 박사, 2006년 독문과의 권모 박사의 자살에 이어
서울대 인문대학 에서만 세 번째 이다.
이공계 석사 박사들을 연구소에서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채용 하여
이공계 기피 현상을 심화 시키지
비정규직들 과 88 만원 세대 젊은이들은
한국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3 백만 명이 넘게 굶어 죽었고 탈북자들이 속출 하는데
3 대째 권력세습 하면서 계속 원자폭탄 만들지
반체제 정치범들 과 그 가족들을 생화학 무기 생체실험으로 죽이며
계속 원자폭탄 만드는 것들 한테
개념 없이 계속 퍼 주지
한반도는 최악의 공산주의 와 최악의 자본주의가 대치 하는
승자 재벌 독식 사회의 생지옥 입니다.
6 자 회담 결렬로
한반도는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황혼자살>급증하는 노인자살…조각난 무병장수의 꿈
"불미스럽게 생애를 마감할 수 밖에 없는 내 처지를 이해해 주게. 늙고 병들고 재산도 날려버린 초라한 독거 생활을 더이상 지속 할수가 없었네. 지금의 생활을 계속한다면 머지않아 정신병자나 치매환자가 되고 말 것만 같네. 그런 지경에서 시중을 받으며 연명한다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비극이야. 세상사 모든 부분에서 뒤떨어진 낙오자인 나는 더이상 우매한 삶을 이어갈 의욕을 상실한지 오래됐네."
올초 경기도에서 자살한 70대 독거노인이 남긴 유서다. 10여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홀몸으로 살아온 이 노인은 담담하게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이 세상과 작별했다.
'무병장수'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열망이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고의 노인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무병장수는 어느덧 조각난 꿈이 되어가고 있다. "1초라도 더 살고 싶다"는 불치병 환자의 외침보다 남은 생에 대한 체념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리고 있다.
◇황혼자살 10년새 2.5배 급증
보건복지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응급실 손상환자 표본심층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996년 28.6명에서 2006년 72.1명으로 약 2.5배가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65세 미만이 11.7명에서 16.8명으로 늘어난 것에 비해 두드러진 수치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자살하는 빈도도 높다. 2005년에 한정시켜보면 60∼64세 노인의 경우는 10만명당 48.0명, 65∼69세는 62.6명, 80∼85세는 무려 127.1명에 달한다. 우리 국민의 평균 자살률이 26.1명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자살이 고령화 사회의 숙명이라고 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2005년의 경우 총 인구의 9.1%이다. 한국이 2018년(14.3%) 고령 사회, 2026년(20.8%)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만큼 노인자살은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살고싶은 의욕을 잃은 노인들
서울 송파구에 사는 92세의 김모 할머니는 지난달 말 집안에서 소파에 앉다가 넓적다리뼈가 골절됐다. 아들이 부축해 병원으로 옮기던 도중 할머니는 다시 한번 쓰러져 복합골절이 됐다.
의사는 "할머니의 뼈가 꼭 분필굵기만하다"고 혀를 찼다. 뼈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고 한달만에 퇴원한 할머니는 그러나 보행기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떼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100살은 너끈히 살 수 있다"고 말하던 할머니는 "세상 사는 게 참 지루하다"고 고개를 숙여 자식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27일 탑골공원에서 만난 김모 할아버지(86)는 뇌병변 장애를 안고 있다. 지난해 10살 연하의 강모 할아버지와 송화가루장사를 시작했다. 강 할아버지가 약재상에서 물건을 떼 오면 김 할아버지는 장애인등록증이 인쇄된 전단지를 돌리며 송화가루를 팔았다. 김 할아버지는 최근 강 할아버지에게 "장사를 제대로 못한다"고 얻어맞아 송곳니 하나가 빠졌다. 김 할아버지는 "경찰서를 찾아가도 노인네들 일이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서울 종로의 노인복지센터를 자주 찾는 김모 할머니(74)는 자식내외와 함께 살며 비교적 편안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단다. 그러나 할머니는 최근 자신이 수저를 댄 음식을 중학생 손녀가 외면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노인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늙으면 죽어야돼"라는 말은 단순한 넋두리로만 들리지는 않는 상황이다.
◇노인자살 예방하는 사회안전망은 걸음마단계
노인들의 자살성공률은 매우 높다. 2006년 65세 이상 자살 시도 노인 중 31.8%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성공했다. 65세 미만보다는 4배 이상이 높은 성공률이다.
그렇다면 노인자살을 예방하는 우리의 사회안전망의 현황은 어떠한가.
미국 등 선진국에서 '노인자살예방센터'는 가장 일반적인 시설중에 하나다. 그러나 국내에는 지난해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 내에 설치된 노인전용자살예방센터가 유일하다. 노인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아직 걸음마 단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노인문제를 사실상 전담하고 있는 곳은 노인복지관이다.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 현재 노인복지관은 183개소에 불과하다. 그나마 서울 경기 부산에 71개소가 몰려 있다.
사회복지관이 노인복지관의 업무를 일부 수행하기도 하지만 노인업무에 전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 오성희 사회복지사는 "다른 복지사도 마찬가지지만 솔직히 나에게 노인들의 고민을 제대로 해결해줄 수 있는 전문성이 있는지 스스로 반문할 때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황혼자살에는 뚜렷한 징후가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발표한 노인자살의 원인을 살펴보면 크게 본인의 질병(35.9%) 우울증(19.6%) 자녀와의 갈등(9.8) 등으로 나뉜다. 얼핏 지병에 의한 자살이 많은 것 같지만 이는 단순히 발생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일 뿐, 구체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임태리 사회복지사는 "노인자살은 역할상실, 건강악화, 핵가족화, 경제적요인, 배우자 및 친지 사망, 사회관계축소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경우 이른바 '자살징후'가 젊은이들에 비해 뚜렷하다고 설명한다. 가장 큰 징후는 우울증이다. 나이가 들면 우울증 유발 호르몬 분비가 많아진다. 이때문에 쉽게 섭섭한 마음이 들고, 같은 상황이라도 젊은이에 비해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서대문정신보건센터 관계자는 "자녀들로부터 받는 소외감과 배우자 사망에 의한 절망감이 겹칠 경우 우울증이 생기기 쉬우며 이것이 자살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약 500만명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사회활동을 활성화하고 경제적 지원책을 강화하는 등 노인복지정책에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대졸 ‘백수’가 25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최근 집계됐다. 비정규직을 떠돌며 반 백수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까지 합하면 300만 명이 훨씬 넘으리라는 예상이다. 그들은 과연 어떤 하루를 보낼까? 대한민국에서 백수로 사는 법-.
“‘백수’생활이 10년 넘어서일까요? 이제는 인이 박였다고 해야 하나?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올해 36세로 무직자로 산 지 10년째가 된다는 정 모 씨.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낡아서 물이 빠진 청바지에 유행이 한참 지난 외투를 입고 등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책가방으로나 쓸 법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은 양복에 넥타이를 맨 채 일과 씨름하고 있을 시간인데 그는 국립도서관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정씨는 재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5급, 7급 공무원시험을 두루 준비했다.
한때는 기자시험에도 도전해 봤다. 기업의 문을 두드린 적은 없다. 회사가 맞지 않는 것 같아 아예 원서도 내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도 그는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살짝 흐려졌다.
“지금은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없는데…. 워낙 일 없이 지낸 지 오래되다 보니 가족들의 눈치가 보이기는 해요. 가족들이 공인회계사 준비를 하라고 하도 성화여서 공부하는 시늉은 하고 있어요. 열심히 하고 있지는 않고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현장에 나가보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그는 자리를 떠났다. 오후 3시가 다 돼가는 평일의 도서관은 원서를 손에 든 대학생부터 머리가 하얗게 센 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붐빈다. 30대로 보이는 사람들을 붙잡으면 열 명 중 일곱 명 정도는 대학을 졸업한 청년백수였다.
백수로 지낸 기간이 길고 짧음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도서관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혼자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한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99학번으로 졸업한 지 2년이 지났다는 김 모(29) 씨가 늦은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구직에 나서면서 전공과 관련 있는 회사에 취업하려고 꽤 노력했는데 생각처럼 잘 안 됐어요. 학교가 연결해준 회사는 근무조건 등이 별로 안 맞았고요. 집이 경기도인데 학교는 충청도여서 그 지역 회사에 취직을 주선해 줬거든요.”
그는 취업에 실패한 후 쭉 기계설계기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자격증을 따서 기계직 공무원에 도전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자격증을 내세워 기업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는 시험에 떨어져 내년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기는 책을 공짜로 볼 수 있어 오는 거예요. 굳이 안 사도 되니까요. 집에서 아침 9시에 나와 저녁 7시까지는 공부해요. 집에 있으면 가족들이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소리도 상처가 되거나 신경 쓰이는 경우가 많아 자꾸 밖으로 나오게 되네요.”불편한 마음에 집을 나서지만 갈 곳은 그리 마땅치 않다. 졸업하고도 구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학교 도서관을 다시 찾기가 망설여진다. 지인들과 마주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결국 주위의 공립 도서관을 이용하게 된다.
- 지방대학 서럽지만 명문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아버지가 제빵기계를 만드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세요. 직원이 2명뿐이어서 제가 가끔 일손을 도와드리고는 했죠. 몸이 힘든 일이고 연세도 많으셔서 이제 그만 쉬셔야 하는데…. 자식 셋이 돈을 벌면 일 안 하셔도 되는데….”
나이 든 아버지께서 험한 일을 하시는 것이 모두 자신의 탓인 것처럼 느껴지는지 김씨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 싶은 생각을 누군들 안 할까? 취업이나 공무원시험 등 몇 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터여서 그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도서관에서 마주친 대졸 백수들은 대부분 공무원시험이나 자격증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사에 취업하는 문턱이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특히 서울 바깥의 지방대학을 나온 학생들은 학벌을 따지지 않고 성적으로만 평가받는 공무원시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 서른한 살의 김도영(가명) 씨 역시 비슷한 경우다. 신림동에서 만난 그는 지방 국립대를 졸업했다. 취업난이 심하다, 심하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단다.
이력서를 50장 가까이 쓰고 나서야 비정한 현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처음에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스무 번, 서른 번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나중에는 사람이 진짜 이상해져요. 하루 종일 취업 사이트를 뒤지면서 이력서를 낼 곳의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그 중 한 군데도 이력서를 넣지 않았어요. 왜인줄 아세요? 더 이상 떨어지기 싫었거든요.”
거의 반 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폐인처럼 PC방만 전전하던 그는 올 초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노무사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려고 마음먹고 제 자신을 돌아보니 벌써 서른이 넘었네요. 벼룩도 낯짝이 있지, 어떻게 부모님께 손을 벌리나요? 제가 벌어 책값도 내고 생활비도 내야죠. 얼마 전부터 여기 신림동 고시원에서 총무 일을 시작했어요.”
만만하게 봤던 아르바이트인데 막상 해보니 보통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 공부와 일을 같이 하려고 했던 처음의 계획은 물 건너간 것 같다. 그는 차라리 고되더라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딱 한 달 정도만 할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시험을 치는 내년 여름까지 그 돈으로 생활해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밥은 고시원에서 주고, 김치 정도는 냉장고에 있어요. 김이나 캔참치, 계란 같은 것을 사서 대충 밥을 차려 먹으면 1주일에 1만 원으로도 살 수 있던데요. 술자리요? 친구들이 사준다고 부르면 한 달에 한두 번 나가는 정도예요.”
이렇게 생활하는 김씨의 한 달 생활비는 10만 원 남짓이다. 그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담뱃값. 꼬박꼬박 몇 만 원이 드는데도 이것만은 끊지 못하겠단다.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이자 낙이라고 한다. 김도영 씨처럼 기업 입사시험에서 여러 번 낙방한 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공무원시험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울 노량진 일대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눠본 이들 중 절반가량의 사람이 “나는 기업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원서조차 내보지 않았다는 점도 놀라웠다. 국내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고 국제대학원에 진학한 이 모(31) 씨는 현재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이들에 대해 그는 일침을 놓았다.
“물론 공직에 뜻을 두고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업의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공무원시험을 붙잡고 있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건 너무 패기가 없는 것 아닌가요?” 이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원하는 기업에 취직하지 못해 다음 기회를 노리고자 대학원에 가게 됐다. “지금은 석사까지 마쳤으니 구직이 쉽지 않겠느냐”는 말에 그는 손을 내젓는다.
“어휴, 말도 마세요. 저처럼 대학원 나온 사람이라고 해서 원하는 기업에 척척 가는 것은 다 옛날 이야기죠. 인문계열 학생들은 이공계 학생들에 비해 곱절은 더 취업이 어려운 것 같아요. 전공을 살려 해외경영 업무를 하는 파트로 가고 싶은데 뜻대로 될지 잘 모르겠어요.” 그는 ‘석사’라서 취업 과정에서 얻는 이점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이라면 원하는 곳에 취직하기 위해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보다 여러 가지 인턴십을 경험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 “대학원 간판도 옛날에나 통해”
구직자들은 가족과의 갈등을 피해 일 없이 길 위를 헤매기도 한다.“제가 참 아쉬워하는 부분 중 하나예요. 인턴이나 기업에서 주최하는 여러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력서에 그런 내용을 써넣은 학생들은 인사담당자가 좋게 평가한다고 해요. 어학연수나 우수한 학점보다 실속 있게 좋은 인턴 자리 하나 경험해 보는 것이 훨씬 나은 것 같아요.”
최근 몇 달간 백수로서 일 없이 지내는 이연지(가명·28·여) 씨 역시 학벌에서는 그다지 밀릴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씨는 우리나라 사립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의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토익은 거의 만점에 가까워 소위 말하는 ‘스펙’도 빵빵하다. 구직 이야기를 꺼내자 자신이 경험한 당혹스러웠던 경험 한 토막을 들려줬다.
“저는 출판계에서 일하고 싶어 쭉 그쪽을 위주로 준비해왔어요. 한번은 모 인터넷 서점에서 서류전형에 통과돼 면접을 보러 갔죠. 전형 과정만 4차에 달했기 때문에 한 달 내내 그 시험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최종까지 올라가자 인사담당자들도 “이번 전형은 임원진에게 인사만 드리고 오는 것이니 거의 붙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 드디어 합격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이씨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욕심을 냈던 다른 회사도 포기하며 ‘올인’했는데…. 그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어요. 대기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장점유율 1위 기업도 아닌데 시간을 한 달씩이나 빼앗고 구직의 기회도 안 주다니요.”
더 황당했던 것은 그 기업의 연봉이 1,800만 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등 소위 명문대 인문계열 학생들이 그 박봉을 감수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원래 출판계가 봉급이 적다는 것은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설마 나보다 좋은 학벌에 그런 대우를 받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을까’ 했던 예상은 산산이 깨졌다고 한다.
영국유학을 다녀와 영어에도 능통한 이씨는 졸업 후 2년 가까이 백수로 지내다 한 대형서점에 취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격무가 연일 이어지는 것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봉급도 적은 데다 원래 제가 해야 할 일 외에도 자꾸 다른 업무를 시키더군요. 휴일도 불규칙적이고 회사도 서울이 아니라서 점점 몸은 더 나빠지고…. ‘이제 한계다’라고 느낄 때쯤 미련 없이 사표를 냈어요. 한번 그렇게 회사에서 혹사당하고 나니 왜 다들 공무원, 공무원 하는지 이해가 되네요. 원하던 일이 아니더라도 무난하게 내 능력 되는 데까지 일하며 배 곯지 않는 수준의 봉급을 받는 곳이라면 저도 어디든 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앞에서 만나본 인문계열 전공 학생들과 달리 예·체능계 출신 학생들은 선택의 폭이 적어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미술을 전공한 허 모(31·여) 씨는 대학 졸업 후 2년간 학원 강사로 일하다 임용고시를 치기로 마음먹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임용고시를 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교직을 이수해야 해서 교육대학원을 다녀야 했어요. 늦게 대학원을 간 탓에 졸업하니 서른한 살이나 됐네요. 그래도 평생 불안정하고 수입도 적은 학원 강사만 할 바에는 좀 오래 걸리고 당장 등록금 등 비용이 들더라도 임용고시를 치는 것이 낫다고 봤어요. 주변에도 결혼하고 애를 낳을 때까지 학원 강사를 하다 뒤늦게 임용고시를 치러 대학원에 진학하는 아줌마도 있어요.”
친구와 함께 도서관 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허씨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편안한 트레이닝복 하의 차림이었다. 그 반쯤 가린 얼굴에서 우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경기도교육청이 공고를 냈는데 2009년 교직임용에 중학교 미술교사는 23명을 선발하기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너무 적은 수여서 허씨는 낙담한 표정이었다.
“미술교사는 적게 뽑기 때문에 경쟁률이 40대 1에 이르는 지역도 있어요. 주변에는 연속 네 번째 시험을 치는 선배도 가끔 보이고요. 속이 타서 죽을 맛이죠.(웃음) 지난 3월 졸업해서 반 년째 백수나 마찬가지인데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죠.”
허씨는 교원임용제도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우수한 교사의 자질을 갖춘 사람은 많은데 교원 임용의 문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아직도 선진국에 비하면 학생수 대비 교사가 턱없이 적어요. 공교육의 품질 향상보다 재정적 여건만 신경 써서 그런 것 아닌가요?”
- 학벌·능력에 관계 없이 직장 선택 폭 좁아져
대학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던 한 학생이 엎드려 잠시 잠을 청하고 있다.지난해 한번 시험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 올해는 꼭 합격하고 싶다며 허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문대생도 취업 걱정을 덜지 못하는 요즘, 선진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은 어떨까?
얼마 전 미국에서 MBA 과정 마케팅을 공부하고 귀국한 최 모(35) 씨는 “나는 억세게 타이밍이 나쁜 사람”이라며 애써 웃어 보였다. “MBA 과정을 마친 후 미국에서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잘 안 풀렸어요. 아시다시피 지금 미국 경기가 엄청 안 좋잖아요.”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후 취업해 4년간 정보기술(IT) 직종에서 직장생활을 해본 적도 있다. 시스템통합(SI) 회사에서 외국계 기업에 대한 컨설팅 프로젝트를 맡았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났다. ‘그 정도의 경력과 이력이면 취업 걱정은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한다.
“취업을 아예 못할 것이라는 걱정은 솔직히 안 합니다. 다만 제가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 원하는 직장에 갈 수 있을지가 문제죠. 이미 미국에서 한번 실패했잖아요? 지금 세계적 금융위기 여파 때문에 저도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것을 느껴요. 선택의 폭도 많이 좁아졌고요.”
대졸자를 비롯한 고학력 백수들의 삶은 졸업 후에도 취업을 위한 준비나 또 다른 공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 중 공무원시험에 도전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매년 치솟는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이해될 법도 했다. 대졸 구직자들은 자신의 욕심에 차지 않는 회사에 취업하기보다 안정적인 공직생활을 택하겠다는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자연히 자의 반, 타의 반 백수생활이 길어진다. 시험에 합격한다면 다행이지만 매번 낙방하다 어영부영 나이만 들어 이제는 기업의 문을 두드릴 수조차 없게 된 사람도 많았다. 대학을 졸업한 백수들의 삶은 그나마 우아한 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나선 이들은 직장을 잡기 위해 더 치열하게 뛰어야 한다.
대졸자들이 늘어나 고졸 학력의 사람들이 하던 일을 차지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더 불리한 처지에 처하게 된 것이다. 김상우(가명·31) 씨의 한 달 수입은 50만 원이 전부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삿짐센터에 취직해 일을 시작했다. 몸을 쓰는 직업이어서 많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처음에는 그럭저럭 벌이가 괜찮아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만큼 돈을 벌었던 기간은 정말 잠시뿐이었어요. 최근 몇 년간 경쟁업체들이 우르르 생겨나면서 일거리가 뚝 끊기기 시작하더군요. 일이 있어야 그날 나가 일당을 받는 식이기 때문에 수입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한 달 내내 한 푼도 못 만지는 때도 있어요. 많이 벌어봐야 한 달에 50만 원 수준이에요.”
특별한 기술도 없는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 자그마한 업체의 말단 직원 자리도 대졸 사원들이 꿰차고 있다. 늘 이삿짐센터의 작업복을 걸치고 다니지만 하루에 한 건도 하지 못하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새로 일을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은 늘 하는데 선뜻 용기가 안 나요. 사실 제가 성격이 좀 욱하는 기질이 있어서 영업이나 다른 일은 잘 못하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용돈 몇 푼을 얻어 쓰고는 해요.”
김씨는 현재 알코올중독에 가까운 상태다. 취재를 위해 만난 식당에서도 그는 손에서 술잔을 놓지 않고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힘든 일을 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술을 가까이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한 병 가까이를 마신 그의 감정에서 심한 기복이 느껴졌다. 위태로워 보였다.
서른여섯의 장대희(가명) 씨는 벌써 회사만 7군데를 전전하고 있다. 대학 졸업장도 없고, 나이도 젊지 않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영업직밖에 없었다. 지금 그는 초고속 인터넷 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이번 달에 월급을 받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작은 목소리에 조심스러운 말투만 봐도 장씨의 소심한 성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영업직은 잘 안 맞을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직장에서 눈치도 보이고 돈도 못 받아요. 그래서 다시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는 하는데, 그래 봤자 영업직밖에 없던걸요.”
장씨는 틈만 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창업교육기관에 연수를 받으러 간다. 창업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는 자본금도, 그럴 만한 배짱도 없다. 교육기관에서 연수를 받을 때마다 나오는 연수비가 더 절실하다. 그의 가방은 각종 교육에서 받아온 전단지와 안내물로 불룩했다.
넘쳐나는 대졸자에 밀려난 고졸 구직자
“이제 나이가 들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절절한 외로움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하는 장씨에게는 이성 친구를 만나고 사귈 만한 통로조차 없었다. 고졸자부터 해외 MBA 학위를 지닌 사람까지 구직자 개개인에 얽힌 사연은 다양하지만 이들 마음속에는 모두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나이가 많고 오래 구직생활을 해온 30대 백수들은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며 비참한 처지를 견디고 있었다. 처음 구직에 도전하며 가졌던 의욕도 이제는 잃어버린 지 오래다. 젊은 시절 간직했던 패기와 열정도 모두 사라진 채 망연자실해 있는 청춘들을 보며 20대 구직자들도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30대 구직자는 “노인들을 위한 취업박람회는 있는데, 30대 무직자나 재취업자들을 위한 취업의 장은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정된, 아니 점점 더 줄어드는 회사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무한경쟁을 뚫고 가야 한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는 “하향취업률이 2000년에 비해 약 3%포인트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하향지원한 구직자가 줄어든 대신 고학력 예비근로자가 실업이나 비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됐다는 분석이다. 고학력 백수가 늘어나고, 고졸자는 대졸자들에게 밀려나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대졸 이상 백수가 257만 명이라는 한국사회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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